Anthony Caro | KUKJE GALLERY
Oct 26, 1994 - Nov 23, 1994
K1
Seoul
INTRODUCTION
After studying sculpture at Royal Academy School in London,Caro worked as assistant to Henry Moore, a British sculptor, from 1951 to 1953. New trends of the 20th century ideas reached Caro through various art books,and led him to move away from the academic techniques he had been familiar with during his studies. However, the influence of Henry Moore, who worked for over 40 years in a bucolic suburb of London ,is readily seen in Caro's works he produced in 1950s -the majority of which are heavy body sculpture made from bronze and lead. Caro's work changed dramatically in 1959 when he met Clement Greenberg, a distinguished critic of modernism. After meeting Greenberg, Caro visited various areas in the U.S, including New York ,Washington, and San Francisco, where he was able to witness first-hand some of the latest trends in Aamerican art. His encounter with the works of David Smith, Kenneth Noland, Jackson Pollock and others led him to open a new chapter of modernism sculpture.
Returning from his trip to the U.S, Caro exhibited large abstract sculptures, brightly painted and standing directly on the ground. By installing industrial materials such as steel beams, wire screen, and steel plates, he depicted dynamic movements, in the form of space drawing ,moving away from his previous figurative sculpture. This was a radical departure from the way sculpture had hitherto been seen and paved the way for future developments in the real space.
In the 1970s. Caro used unpainted and rusted steel instead of brighty painted steel pieces. Heavier steel pieces irregularly cut into various shapes were bent and welded. This shows Caro's attempt to be more faithful to the inherent nature of the material, by displaying steel works unpainted and in their natural state.
In the 1980s. Caro became interested in classical antiquity , and this was soon reflected in his sculpture. His works also expanded to include "sculptitecture", a type of sculpture with an architectural dimension where the spectator is invited to enter the work and experience its inner space. Caro developed an interest in the realtionship between sculpture and architecture during his first visit to Greece in 1985, where he saw classic architecture such as the Acropolis in Athens and the Temple of Zeus. He tried to combine classic art with modern technique. In 1992, Caro exhibited 39 pieces from 1960 to 1991 in the ancient Trajan's Market,Rome. The retrospective exhibition served a dual purpose ,representing yet another blurring of the lines between sculpture and architecture ,as well as providing a forum where past and present are both exquisitely communicated.
Caro's interest in the ancient persists in his later works. The Trojan War (1933-1994) is definitively rooted in the abstract style, but reminds the audience of the Greek gods in the Trojan War, leading the audience back to the world of the ancients. This is one notable example among Caro's constant experiments in interweaving past, present and future.
새로운 조각언어를 찾아서
1963년 런던 화이트채플 미술관에서 열린 안토니 카로의 개인전은 당대 조각의 방향전환을 알리는 이정표와 같은 전시회였다. 여기서 전시된 철제 조각들은 특히 모더니스트 비평가들에게 자신들의 이론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물로 받아들여짐으로써 카로는 모더니즘 조각의 기수로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1959년 런던에서 클레멘트 그린버그와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카로가 헨리무어 식의 육중한 인체 조각에서 철제 구조물로 작업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을지도, 따라서 현대조각의 역사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그해 미국을 방문하여 그린버그를 통해 데이빗 스미스와 케네스 놀랜드 등의 작품을 접하게 됨으로써 모더니즘에 눈을 뜨게 되었다. 여행 직후 그가 제작한 최초의 추상조각, <24시간>(1960)은 놀랜드의 원색과 동심원 형태 그리고 스미스의 기하학적인 철판 구성을 상기시키는 점에서 그에 대한 미국 모더니스트들의 영향을 확인하게 된다. 그 후 그는 미국과 영국을 왕래하며 새로운 조각양식을 탐구하는데 몰두하였으며, 이때 런던의 세인트마틴 미술학교에서 가르쳤으므로(1953-79) 향후 몇십년간 영국 조각의 방향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1960년대 초의 작업에서는 강렬한 색채의 아이빔을 이용한 단순한 구조물들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점차 철판, 철봉, 철망 등의 재료가 첨가 되었다. 단위요소들의 ‘구축(construction)'이라는 방법으로 제작된 이들 조각들은 재료를 깍아내거나(carving) 성형하여(molding) 만들어진 종래의 매스(mass)로서의 조각개념을 혁신한 새로운 조각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이러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와같이 큰 규모의 산업 재료를 바닥에 직접 배열한 경우는 유례없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 조각은 공간적 구축물이라는 면에서 건축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는 마치 건축물을 짓듯이 재료를 조립하여 원새의 구조물을 실제의 공간속에 축조하였다. 그린버그가 데이빗 스미스 보다도 앞선 카로의 혁신성을 “통합적으로 추상적인(integrally abstract)"속성이라고 한 것은 카로의 조각이 이같이 실제공간 속에 직접 침투하여 그 자체를 추상적으로 분할하고 구성하는 점에 주목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속성은 특히 카로의 조각이 받침대 없이 바닥에 직접 놓여지고 있는 점에서 기인한다. 받침대를 경계로 하여 분리되어 있던 작품공간과 실제의 공간이 통합되어 총체적인 공간구성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1966년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테이블 피스(table piece) 테이블을 통해 받침대의 기능이 회복된 듯하다. 그러나 작품을 테이블의 모서리를 이용하여 설치함으로써 그것을 조각의 본질로서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받침대는 아니다. 특히 작품 자체가 테이블 형태로 발전한 경우는 이같은 측면을 확인하게 한다.
실제공간과의 직접적 관련성이라는 측면은 당시 미국의 주요 경향으로 등장한 미니멀 아트와 공통되는 속성이다. 그러나 그린버그나 마이클 프리드와 같은 모더니스트들이 카로의 조각을 무기 삼아 미니멀리즘을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미니멀리즘과는 구분 또는 대비되는 여러 가지 측면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린버그가 그를 모더니스트로 정의할 단서로 삼은 것은 그의 조각에서 보여지는 소위‘시각성(opticality)'이다. 카로의 조각은 우선 대상을 재현하지 않는 추상형상이라는 점에서 순수하게 시각적이다. 또한 재료의 질감이나 중량감 등 물질적인 속성이 최대한 배제되고 원색의 공간구성으로 인지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이같이 시각적으로만 지각되는 형태를 그린버그는 '양식의 일루젼(illusion of modality)'이라고 하여 대상을 재현하는 일루젼과 구분하였다. 카로의 조각은 대상에 대한 일루젼이 배제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전통적 조각개념을 벗어나 있는 동시에, 양식의 일루젼을 함축함으로써 미니멀 아트와 같이‘비예술(non-art)'의 물체로도 전락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모더니즘 조각의 전형으로 추앙되었던 것이다. 프리드 또한 미니멀리즘의 소위 '물체성(objecthood)'을 비판하기 위한 계기를 카로의 조각에서 발견하였다. 그는 특히 각 순간마다 작품 전체가 지각되는‘현재성(presentness)'과 '순간성(instantaneousness)'을 카로의 작품의 속성인 동시에 모더니즘 조각의 속성으로 찬양하면서 이를 미니멀리즘의 물체성을 전복 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보았다. 미니멀리즘에 비교적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카로의 조각을 물질적 현존성과 ‘회화성(pictoriality)' - 색채구성, 무중력성, 정면성 - 이라는 두가지의 상반된 존재방식의 공존으로 설명함으로써 미니멀리즘과 관련되면서도 그것과 구분되는 측면을 시사하였다.
사실상 이들 비평가들의 난해한 해석들은 우리를 더욱 혼란에 빠트릴 수도 있다. 오히려 조각을 음악에 비유한 카로 자신의 예술적 의도가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데 더욱 효과적일 수도 있다. 음표들이 모여 멜로디를 이루듯 단위요소들을 구성하여 조형적 총체를 이룸으로써 음악에서와 같은 감정을 전달하고자 한다는 그의 견해야말로 그의 조각을 건조한 미니멀리즘과 구분하는 효과적인 증거가 되는 것이다. 특히 초기작에서부터 일관되게 발견되는 서정적인 제목들은 이 같은 측면을 뒷받침한다. 더욱이 1970년대 이후의 작업에서는 기법이나 형태 면에서도 서정적 즉흥성이 강조된다. 그는 초기의 명확하고 단순한 기하학적 구성 대신 불규칙하게 잘려진 다양한 형태들을 구부리고 용접하여 역동적인 공간구성을 시도 하였다. 또한 인공적인 선명한 색채 대신 녹이슨 자연스러운 표면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재료의 자발적인 효과를 강조하였다.
1980년대 이후에는 초기부터 출발점이 되어온 건축적 구조로서의 조각 개념이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형태 또는 실제 건축물과 같이 관람자가 들어갈 수 있는 소위 ‘Sculpitecture'로 까지 발전하게 된다. 그는 특히 조각과 건축이 긴말하게 관련된 고전미술의 양식을 현대적인 표현언어로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도움, 기둥, 박공, 계단, 문 등 고전건축을 연상시키는 형태와 폐허와 같은 자연색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또한 최근에는 1960-91의 기간에 제작한 39개의 작품을 로마의 트아리아누스 황제의 시장 유적지에 전시함으로써(1992) 건축과 조각의 결합을 또 다른 국면에서 시도하는 동시에, 보는이로 하여금 과거와 현대의 절묘한 대비와 연속성을 감지하게 하였다.
그의 이같은 시도는 최근의 미술동향에서 발견되는 전통 복귀의 성향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가 최근에 제작한 트로이 전쟁 연작(1993-94)은 그가 과거의 미술에서 또다른 조각의 영역을 발견했음을 알리는 증후이다. 입체주의나 초현실주의, 아프리카 조각, 또는 고대유물을 연상시키는 인체와 같은 구체적인 형상들이 나타나고 있는 점에서 뿐 아니라, 전통적인 성형법에 근거한 세라믹 조각을 시도함으로써 매스로서의 조각개념에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그 인류의 문명과 그 역사에 대한 발언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1960-70년대의 조각이 미래지향적인 산업사회를 표상하는 순수 조형적 구성체였다면, 1980년대 이후 최근작은 과거에 대한 향수와 그것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서술하는 포스트 모던적 감수성을 함축하고 있다.
카로가 특정 시대의 조각가로서만 머무르지 않은 이유는 새로운 조각 언어에 대한 그칠 줄 모르는 실험정신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그의 작업경력은 조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부단한 물음과 그것에 대한 새로운 응답의 과정이다. 1970년대 이후 최근까지의 작업을 망라한 국제화랑에서의 전시에서 우리는 그 과정을 목격하게 될 것이며, 조각의 앞으로의 향방까지도 예측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Returning from his trip to the U.S, Caro exhibited large abstract sculptures, brightly painted and standing directly on the ground. By installing industrial materials such as steel beams, wire screen, and steel plates, he depicted dynamic movements, in the form of space drawing ,moving away from his previous figurative sculpture. This was a radical departure from the way sculpture had hitherto been seen and paved the way for future developments in the real space.
In the 1970s. Caro used unpainted and rusted steel instead of brighty painted steel pieces. Heavier steel pieces irregularly cut into various shapes were bent and welded. This shows Caro's attempt to be more faithful to the inherent nature of the material, by displaying steel works unpainted and in their natural state.
In the 1980s. Caro became interested in classical antiquity , and this was soon reflected in his sculpture. His works also expanded to include "sculptitecture", a type of sculpture with an architectural dimension where the spectator is invited to enter the work and experience its inner space. Caro developed an interest in the realtionship between sculpture and architecture during his first visit to Greece in 1985, where he saw classic architecture such as the Acropolis in Athens and the Temple of Zeus. He tried to combine classic art with modern technique. In 1992, Caro exhibited 39 pieces from 1960 to 1991 in the ancient Trajan's Market,Rome. The retrospective exhibition served a dual purpose ,representing yet another blurring of the lines between sculpture and architecture ,as well as providing a forum where past and present are both exquisitely communicated.
Caro's interest in the ancient persists in his later works. The Trojan War (1933-1994) is definitively rooted in the abstract style, but reminds the audience of the Greek gods in the Trojan War, leading the audience back to the world of the ancients. This is one notable example among Caro's constant experiments in interweaving past, present and future.
새로운 조각언어를 찾아서
1963년 런던 화이트채플 미술관에서 열린 안토니 카로의 개인전은 당대 조각의 방향전환을 알리는 이정표와 같은 전시회였다. 여기서 전시된 철제 조각들은 특히 모더니스트 비평가들에게 자신들의 이론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물로 받아들여짐으로써 카로는 모더니즘 조각의 기수로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1959년 런던에서 클레멘트 그린버그와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카로가 헨리무어 식의 육중한 인체 조각에서 철제 구조물로 작업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을지도, 따라서 현대조각의 역사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그해 미국을 방문하여 그린버그를 통해 데이빗 스미스와 케네스 놀랜드 등의 작품을 접하게 됨으로써 모더니즘에 눈을 뜨게 되었다. 여행 직후 그가 제작한 최초의 추상조각, <24시간>(1960)은 놀랜드의 원색과 동심원 형태 그리고 스미스의 기하학적인 철판 구성을 상기시키는 점에서 그에 대한 미국 모더니스트들의 영향을 확인하게 된다. 그 후 그는 미국과 영국을 왕래하며 새로운 조각양식을 탐구하는데 몰두하였으며, 이때 런던의 세인트마틴 미술학교에서 가르쳤으므로(1953-79) 향후 몇십년간 영국 조각의 방향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1960년대 초의 작업에서는 강렬한 색채의 아이빔을 이용한 단순한 구조물들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점차 철판, 철봉, 철망 등의 재료가 첨가 되었다. 단위요소들의 ‘구축(construction)'이라는 방법으로 제작된 이들 조각들은 재료를 깍아내거나(carving) 성형하여(molding) 만들어진 종래의 매스(mass)로서의 조각개념을 혁신한 새로운 조각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이러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와같이 큰 규모의 산업 재료를 바닥에 직접 배열한 경우는 유례없는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 조각은 공간적 구축물이라는 면에서 건축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는 마치 건축물을 짓듯이 재료를 조립하여 원새의 구조물을 실제의 공간속에 축조하였다. 그린버그가 데이빗 스미스 보다도 앞선 카로의 혁신성을 “통합적으로 추상적인(integrally abstract)"속성이라고 한 것은 카로의 조각이 이같이 실제공간 속에 직접 침투하여 그 자체를 추상적으로 분할하고 구성하는 점에 주목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속성은 특히 카로의 조각이 받침대 없이 바닥에 직접 놓여지고 있는 점에서 기인한다. 받침대를 경계로 하여 분리되어 있던 작품공간과 실제의 공간이 통합되어 총체적인 공간구성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1966년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테이블 피스(table piece) 테이블을 통해 받침대의 기능이 회복된 듯하다. 그러나 작품을 테이블의 모서리를 이용하여 설치함으로써 그것을 조각의 본질로서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의미의 받침대는 아니다. 특히 작품 자체가 테이블 형태로 발전한 경우는 이같은 측면을 확인하게 한다.
실제공간과의 직접적 관련성이라는 측면은 당시 미국의 주요 경향으로 등장한 미니멀 아트와 공통되는 속성이다. 그러나 그린버그나 마이클 프리드와 같은 모더니스트들이 카로의 조각을 무기 삼아 미니멀리즘을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미니멀리즘과는 구분 또는 대비되는 여러 가지 측면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린버그가 그를 모더니스트로 정의할 단서로 삼은 것은 그의 조각에서 보여지는 소위‘시각성(opticality)'이다. 카로의 조각은 우선 대상을 재현하지 않는 추상형상이라는 점에서 순수하게 시각적이다. 또한 재료의 질감이나 중량감 등 물질적인 속성이 최대한 배제되고 원색의 공간구성으로 인지된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이같이 시각적으로만 지각되는 형태를 그린버그는 '양식의 일루젼(illusion of modality)'이라고 하여 대상을 재현하는 일루젼과 구분하였다. 카로의 조각은 대상에 대한 일루젼이 배제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전통적 조각개념을 벗어나 있는 동시에, 양식의 일루젼을 함축함으로써 미니멀 아트와 같이‘비예술(non-art)'의 물체로도 전락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모더니즘 조각의 전형으로 추앙되었던 것이다. 프리드 또한 미니멀리즘의 소위 '물체성(objecthood)'을 비판하기 위한 계기를 카로의 조각에서 발견하였다. 그는 특히 각 순간마다 작품 전체가 지각되는‘현재성(presentness)'과 '순간성(instantaneousness)'을 카로의 작품의 속성인 동시에 모더니즘 조각의 속성으로 찬양하면서 이를 미니멀리즘의 물체성을 전복 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보았다. 미니멀리즘에 비교적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카로의 조각을 물질적 현존성과 ‘회화성(pictoriality)' - 색채구성, 무중력성, 정면성 - 이라는 두가지의 상반된 존재방식의 공존으로 설명함으로써 미니멀리즘과 관련되면서도 그것과 구분되는 측면을 시사하였다.
사실상 이들 비평가들의 난해한 해석들은 우리를 더욱 혼란에 빠트릴 수도 있다. 오히려 조각을 음악에 비유한 카로 자신의 예술적 의도가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데 더욱 효과적일 수도 있다. 음표들이 모여 멜로디를 이루듯 단위요소들을 구성하여 조형적 총체를 이룸으로써 음악에서와 같은 감정을 전달하고자 한다는 그의 견해야말로 그의 조각을 건조한 미니멀리즘과 구분하는 효과적인 증거가 되는 것이다. 특히 초기작에서부터 일관되게 발견되는 서정적인 제목들은 이 같은 측면을 뒷받침한다. 더욱이 1970년대 이후의 작업에서는 기법이나 형태 면에서도 서정적 즉흥성이 강조된다. 그는 초기의 명확하고 단순한 기하학적 구성 대신 불규칙하게 잘려진 다양한 형태들을 구부리고 용접하여 역동적인 공간구성을 시도 하였다. 또한 인공적인 선명한 색채 대신 녹이슨 자연스러운 표면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재료의 자발적인 효과를 강조하였다.
1980년대 이후에는 초기부터 출발점이 되어온 건축적 구조로서의 조각 개념이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형태 또는 실제 건축물과 같이 관람자가 들어갈 수 있는 소위 ‘Sculpitecture'로 까지 발전하게 된다. 그는 특히 조각과 건축이 긴말하게 관련된 고전미술의 양식을 현대적인 표현언어로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도움, 기둥, 박공, 계단, 문 등 고전건축을 연상시키는 형태와 폐허와 같은 자연색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또한 최근에는 1960-91의 기간에 제작한 39개의 작품을 로마의 트아리아누스 황제의 시장 유적지에 전시함으로써(1992) 건축과 조각의 결합을 또 다른 국면에서 시도하는 동시에, 보는이로 하여금 과거와 현대의 절묘한 대비와 연속성을 감지하게 하였다.
그의 이같은 시도는 최근의 미술동향에서 발견되는 전통 복귀의 성향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가 최근에 제작한 트로이 전쟁 연작(1993-94)은 그가 과거의 미술에서 또다른 조각의 영역을 발견했음을 알리는 증후이다. 입체주의나 초현실주의, 아프리카 조각, 또는 고대유물을 연상시키는 인체와 같은 구체적인 형상들이 나타나고 있는 점에서 뿐 아니라, 전통적인 성형법에 근거한 세라믹 조각을 시도함으로써 매스로서의 조각개념에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그 인류의 문명과 그 역사에 대한 발언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1960-70년대의 조각이 미래지향적인 산업사회를 표상하는 순수 조형적 구성체였다면, 1980년대 이후 최근작은 과거에 대한 향수와 그것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서술하는 포스트 모던적 감수성을 함축하고 있다.
카로가 특정 시대의 조각가로서만 머무르지 않은 이유는 새로운 조각 언어에 대한 그칠 줄 모르는 실험정신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그의 작업경력은 조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부단한 물음과 그것에 대한 새로운 응답의 과정이다. 1970년대 이후 최근까지의 작업을 망라한 국제화랑에서의 전시에서 우리는 그 과정을 목격하게 될 것이며, 조각의 앞으로의 향방까지도 예측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