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EN FRANKENTHALER
Sep 26, 1991 - Oct 10, 1991
K1 Seoul


INTRODUCTION

An American Abstract Expressionist painter, Helen Frankenthaler was born December 12, 1928 in New York City, New York, U.S.A. as the youngest child of a New York Supreme Court justice. She attended private schools in New York City, then went to Bennington College in Bennington, Vermont, where she studied art with the Cubist painter Paul Feeley before graduating in 1949. Back in New York, she continued studying under Hans Hofmann at the Art Students' League. From 1958 to 1971, she was married to the Abstract Expressionist painter Robert Motherwell.

Although greatly influenced by Jackson Pollock, Arshile Gorky and others, she soon developed her own approach to painting. She treated each painting as a new work that had its own unique requirements. She started experimenting with stain painting, where an unstretched and unprimed canvas lying on the floor would be treated with heavily diluted oil-based paints to be soaked directly into the fabric. She created silky pools of color that, although abstract, evoked images of landscapes. In 1960s, she started leaving blank areas on her canvas, so that her paintings could "breathe". Her techniques influenced other painters, especially Kenneth Noland and Morris Louis.

Frankenthaler's fame spread as shows of her work in New York, other American cities, and in Europe became well-received. In 1966 she was one of four U.S. painters represented at the Venice Biennale. She had regular exhibitions of her work at the Whitney Museum in New York City, followed in 1969 by a solo retrospective. At various times, she taught drawing and painting at Hunter College, New York University, the University of Pennsylvania, Yale and Princeton. She also received many awards and prizes for her paintings. The Guggenheim Museum in New York exhibited her work in an individual show in 1985 and the Museum of Modern Art in New York presented her retrospective in 1989.


1950년대는 추상미술에 있어 이른바 미국적 전통이 확립되는 시기이다.당시 윌렘 드쿠닝, 프란츠 클라인,잭슨 폴록 등은 유럽의 앵포르멜 추상을 거대한 규모와 대담한 필치로 실험하여 해롤드 로젠버그가 언급한대로 '새로움의 전통'이라는 추상표현주의 경향을 이루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크 로드코, 바넷 뉴만,클리포드 스틸 등에 의해 커다란 색면에 의하여 보다 고요하고 명상적인 화면을 창출하는 방법이 탐구되고 있었다.그리하여 1950년대 후반에는 젊은 화가들을 중심으로 이들의 넓은 색면을 계승한 화가들이 등장하였다. 헬렌 프랑켄텔러,쥴즈 올리츠키,모리스 루이스,케네스 놀랜드 등이 그들인데, 으들 중 가장먼저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주의를 끌었으며 나머지 화가들에게 선구적인 모범을 보여준 작가가 프랑켄텔러다. 특히 루이스가 염색기법을 사용하게 된 것도 1953년에 그의 <산맥과 바다>를 본것이 계기가 되어서 였다.

프랑켄텔러의 작품에서 그린버그나 루이스가 주목한 것은 순수 캔버스 천에 물감을 스며들게 함으로써 바탕과 형상의 구분을 극복하여 완벽한 평면성에 이르는 방법이었다. 그는 이같은 기법에 의하여 이른바 "색채-형태"를 성취하게 되었다. 형태의 영역을 채우기 위한것이 아닌 자울적 존재로서의 색채,즉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 곧 형태를 이루는 색채가 그것으로서,이러한 화면에서 면이나 선의 형상은 색채효과의 일부분을 이룬다. 이같은 화폭과 그 위에 덧붙여진 색채로서가 아니라 색채자체로서만 이루어진 그의 그림은,그린버그에게는 모더니스트 회화의 과제로서 제시한 평면성의 문제를 성취한 예로 생각되었고,루이스에게는 색채사용에 대한 새로운 지각을 갖게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프랑켄텔러는 루이스,놀랜드,올리츠키 등과 함께 그린버그가 1964년에 기획한 <후기-회화적 추상>전에 선정됨으로써,'후기-회화적 추상'또는 이와 동등한 의미로 사용된 '색면추상'의 작가로서 거론되게 되었다. '후기 회화적 추상'이란 명칭은 그린버그가 추상 표현주의라는 '회화적 추상'에서 모더니즘의 '자기비평'의 경향,즉 평면성과 색채에 주목하는 속성이 더욱 진전된 예를 지칭하기 위하여 사용한 용어이다. 그러나 프랑켄텔러는 화면의 평면성과 색채의 물질성을 구현하는 동시에, 무한한 공간감과 색채가 주는 심리적 감흥을 추구하는 영원한 서정주의자로 남아 잇었다는 점에서 다른 색면추상 작가들과 구분되며, 1950년대 추상 표현주의와 1960년대 색면추상의 진정한 중개자라고 할수있다. 이 같은 그의 위치를 말해 주듯,그는 평면성과 공간감,물질성과 정신성,절제와 자발성이 공존하는 미묘한 화면을 만들어 내었다.

그의 색면은 평평한 색면자체인 동시에 무한한 공간감을 산출하고 있다. 이는 순수한 색채효과에 의해 나타나는 공간으로 르네상스식의 공간 즉 시각적 초점이 맞추어진,따라서 물리적으로 한정된 공간이 아니다. 이것은 시각적 현실이라기 보다 관념의 세계에 속한 공간인 것이다. 그의 화면은 시적인 은유의 세계와도 같이 우리를 신비스럽고 은밀한 세계로 이끌고 간다.그리하여 화폭 위에서의 공허한 형식적 반복으로 머무를 추상회화의 위험성으로 부터 벗어나 형식과 주제를 겸비한 화면을 성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