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M DINE
Oct 27, 1992 - Nov 25, 1992
K1 Seoul


INTRODUCTION

Born in 1935 at Cincinnati, Ohio. He studied at the University of Cincinnati and at the Boston School of Fine and Applied Arts in Boston, Massachusetts from 1953 to 1957. In 1957 he received a Bachelor of Fine Arts degree from the Ohio University, Athens. He moved to New York in 1959. He staged his first Happenings with Claes Oldenburg and Allan Kaprow at the Judson Gallery, New York. He had his first one-man exhibition at the Reuben Gallery, New York. Between 1960 and 1965 he had various guest professorships, among others at Yale University, New Haven, and Oberlin College, Ohio. He was represented at the Venice Biennale in 1964, and at the documenta "4" in Kassel in 1968. Since 1967 he has taught at the College of Architecture, Cornell University, Ithaca, New York. He lives in New York and London. In his paintings, drawings, sculptures, graphics, collages and assemblages he combined different techniques with handwritten texts and words and set real everyday objects against undefined beckgrounds. The objects were both commonplace and personal, both poetic and ironic, reflecting his own feelings about life. His constantly varied bathrobe, transparent to the gaze of the world, was a kind of metaphor for a self-portrait. In the 70s he turned to representational painting of a traditional kind.


짐 다인은 현실과 격리된 고상함을 추구하던 추상표현주의 미술이 미국 화단을 풍미하던 시기에 이에 맞서 1960년을 전후하여 재스퍼 존스, 로이 리히텐슈타인, 로버트 라우센버그등 그의 동세대 작가들과 더불어 일상 소비생활 속의 킷취(Kitsch)한 것들을 예술속에서 포괄시키는 작업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팝(Pop)미술 운동의 핵심적 인물들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이들은 도시생활속에 버려진 소비재의 파편들, 대중 미디어속에 등장하는 이미지의 반복, 기호, 만화의 컷등을 그대로 자신들의 작품 소재로 차용하였다. 그러나 리히텐슈타인, 라우센버그등이 지금까지도 팝적인 개념과 방법의 일관된 틀 속에서 자신들의 고정화된 작품의 이미지를 고수해 오고 있는 것에 반해 짐 다인의 지금까지의 작업여정은 이제 그를 단순히 '팝 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로 규정짓기엔 꽤나 큰 변화를 수반해 왔음을 자신의 근작들을 통해 증명해 보이고 있다. 60년대 초, 짐 다인은 매우 감각적인 기법으로 실내 가운(robe), 하트(heart), 공구류(tools)등 평범한 일상적 이미지의 대상들을 자신의 작품속에 끌어들였다. 소재에 대한 생략적 묘사, 꼴라쥬된 이미지들이 주는 모호함과 위트(wit), 실제 오브제와 평면적 캔바스의 결합에 의해 연출되는 또다른 상황의 시도등, 이 시기 그가 보여준 작업의 양식과 개념은 다른 팝 미술가들과 마찬가지로 기존예술의 전통적 가치 체계에 전면적으로 맞섰던 다다이즘(dadaism)에 그 뿌리를 둔 것이었다. 그러나 특유의 감성적인 표현기법과 다다(dada)적 위트가 넘치는 작품을 생산해 내던 이 작가는 70년대 중반에 들어서서 작품세계에 큰 변화를 맞이한다. 그는 전통적인 기법과 소재를 다루는 드로잉 작업에 강한 집착을 보이기 시작, 이후 몇년간 우울한 분위기를 띄는 인물및 정물묘사 작업에만 열중하게되는데 이때가 그에게 있어서는 보다 전통적인 개념의 테두리속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에 대한 향수어린 욕구를 표출시키기 시작한 시기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그가 이전에 그토록 전위적인 팝 미술가였었다는 사실이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전통적인 소재의 선택과 묘사의 기교를 보여주고 있는 이시기의 드로잉 작업들은 대상의 단순한 외형 추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모델이되는 대상들을 통해 작가 자신이 품고 있는 고뇌, 격정 등 어떤 '내면의 분위기'를 살려 내기 위한 작가의 강한 '주관 부어 넣기(반 고호적인)'의 시도였던 것으로 받아 들여진다. 이때부터 짐 다인은 그의 기존 작품속에 존재하던 팝적 소재들을 작가 자신의 주관적 체혐의 투사를 위한 수단으로 전화시키며 표현성 강한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발표하게 되는데 후의 그의 활동은 시기적으로나, 작업의 성격으로 볼때 개인적인 의식의 흐름을 상징화하는 '이미지'와 자유롭고 격렬한 '표현적' 작업에의 복귀를 선언하며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유럽과 미국 화단을 휩쓸었던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운동이라는 주변의 예술적 상황과 맞물리며 오늘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자신을 일상 소비재나, 기호, 우상적 이미지 등에 장난스레 투사시켜 스스로를 대중 소비사회의 객관적 존재로서 표현하려 했던 짐 다인은 70년대 중반 이후를 기점으로 점차 작가 자신의 내면에 자리하는 열정, 고뇌, 환희등 주관적 감정의 흐름을 나타내기 위한 매우 '표현적'인 것에로 작업의 의식을 전환 하였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그가 변화로 가득한 자신의 내면 세계를 자연물인 나무(tree)시리즈를 통해 매우 강한 표현적 터치를 통해 상징화시키기도 했음은 그가 이전의 팝적인 개념으로부터 많이 떨어져 있게 됨을 시사해주는 좋은 예이다. 즉, 위트와 유우머에 의해 가볍게 처리됨으로써 지극히 팝적이고 객관적 대상물로 존재하던 그의 작품 소재들은 그 이후의 작업속에서는 더이상 팝적인 고정 개념의 틀 속에 있지 않고 작가 자신의 내면의 감정의 격량, 체험등을 표출시키는 '주관'의 표현 수단으로서 그 역할의 변화를 갖게 된 것이다. 따라서 현재 그의 작업속에서 때로는 회화적 표현으로서 때로는 조각물로서 그리고 때로는 실제의 오브제로서 트레이드마크 처럼 여전히 남아 있는 하트 실내 가운 등 그의 소재가 갖는 의의는 그의 초기 작업시절 작품 속에 나타난 이 이미지들이 갖고 있던 그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이 분명해진다. 즉, 30년 가까이 반복 되어온 그의 하트(heart)는 더이상 팝미술의 개념 속에 포괄되는 기호적 의미의 하트가 아니며, 무수히 되풀이된 그이 실내가운 역시 그 기존의 의미는 소멸해버리고 이제 작가의 복잡한 내면 심리의 매커니즘을 상징하는 자화상을 그려내기 위한 작은 조형적 수단으로 작품내에서의 그 가치가 변모 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 대신 걍력한 색채와 자유분방하고 힘에 넘치는 붓작업의 격렬한 에너지가 그의 화면을 압도하며 새로운 감동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 보여질 그의 근작 회화들과 드로잉 작업들은 역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소재들이 갖고 있는 기존의 객관적 의미를 담은 그릇이라고 하기 보다는 작가 자신의 체험과 내면의 흐름을 그때그때 포착하여 기록한 '일기(diary)'와도 같은 의미로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는 초기 팝 아티스트 시절, 추상표현주의 미술이 표방한 예술의 고급적 개념에 맞섰으면서도 작품의 기법적 측면에서는 때때로 추상 표현주의 미술의 자유 분방한 붓작업의 기교를 재치있게 차용하여 독특한 감성적 효과를 보여주었었는데 특히 그의 요즘의 회화작품속에 나타나는 활달한 붓의 에너지는 이제 커다란 위력을 갖고 그의 '소재'들이 작품속에서 갖는 비중을 압도한채 '회화성' 충만한 화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그의 요즈음의 조각작업이 평면작업들에 비해 여전히 강한 다다(dada)적 개념의 테두리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그의 평면작업과 입체가 서로 꼭같이 일치되는 궤적을 밟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결국 현실과 격리된 고급적 개념의 추상미술에 맞선 팝미술 운동에 가담하였던 짐 다인은 이후 작가적 체험의 연륜 속에서 자신의 팝적소재는 그대로 간직한 채 작가의 내면세계와 자유로운 의식의 흐름을 주제와 기법에 구애없이 적극적으로 표출 시키고자한 표현주의 미술의 가치체계를 포괄적으로 흡수하여 뛰어난 감성과 직관으로 자신의 작품세계의 새로운 경지를 엶으로써 예술적 발전의 변증법을 우리에게 훌륭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