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e Williams,Ghada Amer,Shirazeh Houshiary | KUKJE GALLERY
Mar 17, 2004 - Apr 23, 2004
K1
Seoul
INTRODUCTION
현대 미술은 과거와는 달리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그 주류를 형성하기 보다는 지구촌 곳곳의 다양한 문화와 환경을 다양하게 반영하고 있다. 특히, 이번 국제갤러리에서 초대된 3인의 작가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현대미술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여성이라는 공통적인 성별을 가지고 있으며 남성 중심으로 흘러온 미술사의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더불어 가다 아메르와 쉬라제 후쉬아리는 서구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수 민족 태생으로 현대미술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혼성의 경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페미니즘적인 작업으로 해석 되거나 또는 냉철한 이성과 영혼 사이의 내면 세계를 탐구하여 본질을 탐구하고 있다. 이들이 보여주는 작품들은 대부분 평면 작업이며 추상화된 이미지들이다. 이는 유기적인 곡선을 이용하여 신체 부위를 직접적으로 연상하게 하여 시각적으로 반복과 복합적 혼돈으로 인한 적나라한 감흥과 동시에 그 덧없음을 보여주는가 하면(수 윌리암스) 실이라는 재료적 측면의 여성성을 이용하여 남성의 시각적 대상이 되고 있는 포르노그라피 이미지가 차용되기도 한다(가다 아메르). 극도로 정제된 기하학적 이미지는 종교적인 초월성과 동시에 화면 표면에서 느껴지는 강한 물질성을 드러내기도 한다(쉬라제 후쉬아리).
가다 아메르 Ghada Amer (b. 1963)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외교관이어서 해외여행을 자주 하였고 프랑스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가다 아메르는 다른 여러 가지 문화에 대한 접촉과 아버지의 진보적 성향으로 인해 그녀의 예술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대학에서 독일어와 영어를 전공하며 저녁에는 미술을 공부했다. 감성적이며 로맨틱한 엽서와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흥미로부터 예술적 재능이 시작되었고, 그녀의 최근 페인팅과 종이 위에 제작한 작품 가운데 몇몇은 이런 어릴 적 영향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만화 같은 형상들을 양식화된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십대시절, 잠시 병을 앓으면서 받은 미술치료에서 습관화 된 드로잉과 페인팅이 그녀의 삶을 구원했다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그녀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즐거움을 넘어 그녀를 계속 살게 하는 이유라고 말하고 있다. 아메르는 미술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서 보스톤의 스쿨 오브 뮤지엄 오브 파인 아트(School of the Museum of Fine Arts)에 입학했다. 그 후에, 그녀는 니스의 에콜 드 보자르(Ecole des Beaux Arts)에서 페인팅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파리에서 미술공부를 계속했다.
그녀는 일반적으로 남성적인 페인팅 주재료인 물감과 붓을 대신하여 실과 바늘을 이용하여 여성의 활동인 자수를 통해 캔버스를 메운다. 언뜻 보면 실의 유연한 아름다움과 빛깔이 반복적으로 그려진 추상적 이미지인 듯 한 그녀의 작품은 그 주제로 페미니즘과 관련된 여성 문제들을 다루는데, 그녀는 포르노 잡지에 나오는 모델들의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긴 후 실과 바늘로 이미지를 꿰매고 마지막으로 아크릴 액체를 뿌리면서 마무리를 짓는다. 남성의 성적 전유물인 포르노 잡지 모델들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이슬람교 사회에서 억압 받으며 살아가는 여성들의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1988년, 그녀는 이집트의 패션잡지 Venus에서 읽은 기사 중 샤넬(Chanel) 모델들이 모자, 짧은 머리, 긴 소매 등 지역적 관례에 맞게 개조된 의상을 입고 베일을 쓰고 있는 이미지들을 보게 되었고 여기서 효과적으로 포장된 동양/서양(oriental/occidental)의 혼합은 패턴과 구상적 자수로 만들어진 아메르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여성과 관련된 도구와 수단을 사용하여 여성을 그리는 방법을 찾는데 위와 같은 잡지 이미지가 스스로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여성의 가사 노동을 다루면서 캔버스 위에 바느질을 하는 기법을 전통 회화의 재료와 다르지 않게 취급하며 이를 자신의 페인팅 기법이라고 하였다. 남성의 전유물인 포르노 잡지의 여성이미지를 노골적으로 표현하였으나 등장인물들은 더 이상 시각적 대상으로서가 아닌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거나 혹은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모습으로 표현 된다. 아메르는 이미지뿐 아니라 텍스트 자체를 작품에 차용하였는데 주로 섹슈얼리티에 관련된 금기된 문장들이었고 수많은 여성잡지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미용방법과 조언을 읽으면서 그 소스를 찾아냈다.
아메르의 페인팅은 금기시되어 왔던 섹슈얼리티에 관한 소재를 다룰 뿐 아니라, 또한 실재적 재료자수라는 "여성적”수공예와 작품과 관계된 미술사의 전통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그녀의 페인팅은 캔버스의 표면에 신성하고 창조적인 아티스트의 내면을 신비롭게 드러내고자 하는 추상표현주의의 의도를 파괴하고 있다.
90년대 초부터 수많은 그룹 및 개인전을 해온 작가는 제48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하여 유네스코 상 (UNESCO prize)을 수상하였으며, 2000년도에는 한국의 부산 비엔날레 (PICAF)와 광주 비엔날레에 참가하여 국내 관객들에게도 소개된바 있다.
수 윌리암스 Sue Williams (b.1954)
수 윌리암스(1954, American)의 작품 속 이미지들은 페미니즘, 성(gender), 성의 차이(sexuality), 인간의 욕망 등에 대한 환상과 그에 따른 편견으로 규정되는 인간의 상태에 반응하는 그녀의 정열적인 감응 속에 성적으로 그리고 사색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일상생활을 통한, 그리고 기억 속에 존재하는 사적인 경험과 생각에 대한 작가의 감흥이 이미지와 텍스트를 통해 즉흥적으로 지어진다. 그녀의 작품은 현실세계에 대한 반향이며 그런 그녀의 세계와 그 세계를 작품으로 구현해내는 작업은 좀 더 광활한 '정치적' 해설로 이어진다. 그녀의 작품은 대중적인 현대문화 속에서 보여지는 특정한 이슈들을 다루고 있으며 겉만 번지르르한 잡지들, 광고, 텔레비전과 음악 등으로부터의 영향은 그녀의 작품들 속에서 심각하기도 하고 또 쾌활하기도 한 역할을 한다. 또한 그녀의 작품에는 페미니스트로서의 근본적인 논쟁(issue)이라 할 수 있는 알리고, 야기하고, 선동하고, 맞서고자 하는 의무와 정치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적인 수준의 의미를 부여하고 전달하려는 의지가 배어있다. 화면 전체에서 구불거리는 선들은 그녀 작업을 전반적으로 지배해 온 인간의 인체를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추상적인 이미지는 관객으로 하여금 신체 부위를 연상케 하고 이러한 추상화된 선들의 겹쳐짐과 자유로운 구성은 작가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추상표현주의 작품의 성격과는 다른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The National Museum and Galleries of Wales, Glynn Vivian Art Gallery, and Welsh Assembly Government 등과 같은 다양한 public collection에 포함되어 있으며, 다수의 영국과 유럽 등지에 Private Collection으로 소장되어 있다.
쉬라제 후쉬아리 Shirazeh Houshiary (b. 1955)
이란의 시라즈에서 태어난 후쉬아리는 1976년 런던의 첼시 미술학교(Chelsea School of Art)에 입학한 이후, 지금까지 런던에서 살고 있다. 1990년대의 전시들이 그녀를 1980년대의 뉴 브리티시 아트의 선구자로 소개하거나, 그녀의 정체성을 이란 미술의 선구자라고 강조하는 방향으로 기획되었지만, 그녀는 어떤 분류도 피하고, 그녀를 전시에 맞게 마음대로 재단하려는 의도도 거부했다. 젠더나 민족성에 관심을 두지 않은 채 그것들을 뛰어넘으려고 쉬지 않고 노력하면서, 그녀는 조건 없는 분배와 모든 인류가 공유하는 공간을 위한 길을 찾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에는 동양의 신비주의, 특히 수피교(Sufism)에 대한 심오한 추구가 바탕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그녀는 패러독스를 제기하고 또 타파하고, 이원적 사고를 파괴하고, 정신을 과학과 통합하면서, 간단한 분류화와 개념적 고립을 실험하고 극복하고 있다. 그의 출생지 페르시아의 예술은 언제나 그녀를 따라다니고 있으며 서양 예술의 전통과 함께 결합되어 그의 작품의 큰 특성을 만들어 낸다. 페르시아는 이슬람 예술의 중심지로 재인식되고 있다. 내면의 진실 탐구와 정신적인 것에의 추구는 20세기 초의 모더니스트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후쉬아리가 깊은 연대감을 느꼈던 몬드리안은 회화는 표현에 있어서 기본 원리이자 핵심이라고 말했다. 신지학神智學에 흥미를 가졌던 몬드리안은 보이는 존재의 외부에는 숨겨진 리얼리티가 있다고 믿었다. 이는 추상 언어로만 표현되며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통용되는 진실이 되는 것이다. 몬드리안과 후쉬아리 두 작가는 비록 기하학적인 이미지를 이용하여 초월의 의미를 표현한 점을 같았지만 몬드리안은 기하학적인 무늬를 직관적으로 사용하였고 반면, 후쉬아리는 종교적이고 신성한 것의 표현을 바탕에 깔고 어떤 논리적 규칙을 따라 표현하였다. 그의 회화는 빛과 어둠이라는 신에 대한 이중적인 모습을 제안하고 있다. 빛을 보게 하는 방법이 어둠을 존재하게 하여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의 조합은 많은 종교에서는 공통적으로 사용된다. 또한 그의 조각 작품에서도 이 빛과 어둠의 균형이 강조되곤 하였던 것이다. 그는 논리적인 기하학을 주로 사용했던 초기 모더니즘 작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았고, 수피교에서 감흥을 받았으며 절대주의(Suprematism), 순수주의(Purism) 등의 미술사 사조의 경향들을 탐구하였다. 또한 황금 분할을 사용하였던 고대 그리스 건축과 플라톤의 사상을 보여주는 Le Coebusier에 깊은 감흥을 받았다. 후쉬아리의 모노크롬 페인팅은 정반대인 것들의 만남과 다른 문화들의 뒤섞임을 보여주며, 전부를 수용할 뿐 아니라 동시에 어느 것도 수용하지 않는 상태를 드러내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상태를 이슬람도 아니며 현대적인 것도 아닌, 그러나 양쪽 모두에 새로운 어떤 새로운 질서로 향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초기 드로잉들은 아랍식 서예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페인팅에서, 후쉬아리는 그 원본을 숨기고, 단어의 정체성도 드러내지 않으면서 단어를 베끼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미지를 원본에서 분리하는 과정에서 형태와 의미를 함께 용해시키기 위하여 그녀는 반복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반복은 서구의 미니멀리즘 작업과 수피교의 명상의 방법인 zikr 모두에서 핵심적인 방법이다. 후쉬아리는 지운 흔적으로 서체를 대체하거나 색으로 서체를 가리면서, 작품을 형태에서 무형태로, 특정 단어에서 발음할 수 없는 것으로, 읽을 수 있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텍스트에서 행위의 흔적을 담아내는 추상화로 전환시키고 있다. 그녀는 페인팅 표면 위에서 발견 되는 집요한 흔적들을 통하여 만드는 과정, 개인적 제스처가 시간을 새기는 과정, 표면에 저항하는 개인의 존재 압력, 개인의 인식적 정확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후쉬아리가 힘, 호흡, 또는 에너지 같은 가장 덜 물질적인 형태로 자신을 그려내기를 노력하고 있는 듯하다. 그 결과, 남은 것이 바로 행위의 환영이다.
가다 아메르 Ghada Amer (b. 1963)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외교관이어서 해외여행을 자주 하였고 프랑스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가다 아메르는 다른 여러 가지 문화에 대한 접촉과 아버지의 진보적 성향으로 인해 그녀의 예술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대학에서 독일어와 영어를 전공하며 저녁에는 미술을 공부했다. 감성적이며 로맨틱한 엽서와 일러스트레이션에 대한 흥미로부터 예술적 재능이 시작되었고, 그녀의 최근 페인팅과 종이 위에 제작한 작품 가운데 몇몇은 이런 어릴 적 영향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만화 같은 형상들을 양식화된 선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십대시절, 잠시 병을 앓으면서 받은 미술치료에서 습관화 된 드로잉과 페인팅이 그녀의 삶을 구원했다고 한다. 오늘날까지도, 그녀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즐거움을 넘어 그녀를 계속 살게 하는 이유라고 말하고 있다. 아메르는 미술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서 보스톤의 스쿨 오브 뮤지엄 오브 파인 아트(School of the Museum of Fine Arts)에 입학했다. 그 후에, 그녀는 니스의 에콜 드 보자르(Ecole des Beaux Arts)에서 페인팅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파리에서 미술공부를 계속했다.
그녀는 일반적으로 남성적인 페인팅 주재료인 물감과 붓을 대신하여 실과 바늘을 이용하여 여성의 활동인 자수를 통해 캔버스를 메운다. 언뜻 보면 실의 유연한 아름다움과 빛깔이 반복적으로 그려진 추상적 이미지인 듯 한 그녀의 작품은 그 주제로 페미니즘과 관련된 여성 문제들을 다루는데, 그녀는 포르노 잡지에 나오는 모델들의 이미지를 캔버스에 옮긴 후 실과 바늘로 이미지를 꿰매고 마지막으로 아크릴 액체를 뿌리면서 마무리를 짓는다. 남성의 성적 전유물인 포르노 잡지 모델들뿐만 아니라 보수적인 이슬람교 사회에서 억압 받으며 살아가는 여성들의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인다. 1988년, 그녀는 이집트의 패션잡지 Venus에서 읽은 기사 중 샤넬(Chanel) 모델들이 모자, 짧은 머리, 긴 소매 등 지역적 관례에 맞게 개조된 의상을 입고 베일을 쓰고 있는 이미지들을 보게 되었고 여기서 효과적으로 포장된 동양/서양(oriental/occidental)의 혼합은 패턴과 구상적 자수로 만들어진 아메르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여성과 관련된 도구와 수단을 사용하여 여성을 그리는 방법을 찾는데 위와 같은 잡지 이미지가 스스로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여성의 가사 노동을 다루면서 캔버스 위에 바느질을 하는 기법을 전통 회화의 재료와 다르지 않게 취급하며 이를 자신의 페인팅 기법이라고 하였다. 남성의 전유물인 포르노 잡지의 여성이미지를 노골적으로 표현하였으나 등장인물들은 더 이상 시각적 대상으로서가 아닌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거나 혹은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모습으로 표현 된다. 아메르는 이미지뿐 아니라 텍스트 자체를 작품에 차용하였는데 주로 섹슈얼리티에 관련된 금기된 문장들이었고 수많은 여성잡지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미용방법과 조언을 읽으면서 그 소스를 찾아냈다.
아메르의 페인팅은 금기시되어 왔던 섹슈얼리티에 관한 소재를 다룰 뿐 아니라, 또한 실재적 재료자수라는 "여성적”수공예와 작품과 관계된 미술사의 전통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그녀의 페인팅은 캔버스의 표면에 신성하고 창조적인 아티스트의 내면을 신비롭게 드러내고자 하는 추상표현주의의 의도를 파괴하고 있다.
90년대 초부터 수많은 그룹 및 개인전을 해온 작가는 제48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하여 유네스코 상 (UNESCO prize)을 수상하였으며, 2000년도에는 한국의 부산 비엔날레 (PICAF)와 광주 비엔날레에 참가하여 국내 관객들에게도 소개된바 있다.
수 윌리암스 Sue Williams (b.1954)
수 윌리암스(1954, American)의 작품 속 이미지들은 페미니즘, 성(gender), 성의 차이(sexuality), 인간의 욕망 등에 대한 환상과 그에 따른 편견으로 규정되는 인간의 상태에 반응하는 그녀의 정열적인 감응 속에 성적으로 그리고 사색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일상생활을 통한, 그리고 기억 속에 존재하는 사적인 경험과 생각에 대한 작가의 감흥이 이미지와 텍스트를 통해 즉흥적으로 지어진다. 그녀의 작품은 현실세계에 대한 반향이며 그런 그녀의 세계와 그 세계를 작품으로 구현해내는 작업은 좀 더 광활한 '정치적' 해설로 이어진다. 그녀의 작품은 대중적인 현대문화 속에서 보여지는 특정한 이슈들을 다루고 있으며 겉만 번지르르한 잡지들, 광고, 텔레비전과 음악 등으로부터의 영향은 그녀의 작품들 속에서 심각하기도 하고 또 쾌활하기도 한 역할을 한다. 또한 그녀의 작품에는 페미니스트로서의 근본적인 논쟁(issue)이라 할 수 있는 알리고, 야기하고, 선동하고, 맞서고자 하는 의무와 정치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적인 수준의 의미를 부여하고 전달하려는 의지가 배어있다. 화면 전체에서 구불거리는 선들은 그녀 작업을 전반적으로 지배해 온 인간의 인체를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추상적인 이미지는 관객으로 하여금 신체 부위를 연상케 하고 이러한 추상화된 선들의 겹쳐짐과 자유로운 구성은 작가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추상표현주의 작품의 성격과는 다른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The National Museum and Galleries of Wales, Glynn Vivian Art Gallery, and Welsh Assembly Government 등과 같은 다양한 public collection에 포함되어 있으며, 다수의 영국과 유럽 등지에 Private Collection으로 소장되어 있다.
쉬라제 후쉬아리 Shirazeh Houshiary (b. 1955)
이란의 시라즈에서 태어난 후쉬아리는 1976년 런던의 첼시 미술학교(Chelsea School of Art)에 입학한 이후, 지금까지 런던에서 살고 있다. 1990년대의 전시들이 그녀를 1980년대의 뉴 브리티시 아트의 선구자로 소개하거나, 그녀의 정체성을 이란 미술의 선구자라고 강조하는 방향으로 기획되었지만, 그녀는 어떤 분류도 피하고, 그녀를 전시에 맞게 마음대로 재단하려는 의도도 거부했다. 젠더나 민족성에 관심을 두지 않은 채 그것들을 뛰어넘으려고 쉬지 않고 노력하면서, 그녀는 조건 없는 분배와 모든 인류가 공유하는 공간을 위한 길을 찾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에는 동양의 신비주의, 특히 수피교(Sufism)에 대한 심오한 추구가 바탕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그녀는 패러독스를 제기하고 또 타파하고, 이원적 사고를 파괴하고, 정신을 과학과 통합하면서, 간단한 분류화와 개념적 고립을 실험하고 극복하고 있다. 그의 출생지 페르시아의 예술은 언제나 그녀를 따라다니고 있으며 서양 예술의 전통과 함께 결합되어 그의 작품의 큰 특성을 만들어 낸다. 페르시아는 이슬람 예술의 중심지로 재인식되고 있다. 내면의 진실 탐구와 정신적인 것에의 추구는 20세기 초의 모더니스트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후쉬아리가 깊은 연대감을 느꼈던 몬드리안은 회화는 표현에 있어서 기본 원리이자 핵심이라고 말했다. 신지학神智學에 흥미를 가졌던 몬드리안은 보이는 존재의 외부에는 숨겨진 리얼리티가 있다고 믿었다. 이는 추상 언어로만 표현되며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통용되는 진실이 되는 것이다. 몬드리안과 후쉬아리 두 작가는 비록 기하학적인 이미지를 이용하여 초월의 의미를 표현한 점을 같았지만 몬드리안은 기하학적인 무늬를 직관적으로 사용하였고 반면, 후쉬아리는 종교적이고 신성한 것의 표현을 바탕에 깔고 어떤 논리적 규칙을 따라 표현하였다. 그의 회화는 빛과 어둠이라는 신에 대한 이중적인 모습을 제안하고 있다. 빛을 보게 하는 방법이 어둠을 존재하게 하여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빛과 어둠의 조합은 많은 종교에서는 공통적으로 사용된다. 또한 그의 조각 작품에서도 이 빛과 어둠의 균형이 강조되곤 하였던 것이다. 그는 논리적인 기하학을 주로 사용했던 초기 모더니즘 작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았고, 수피교에서 감흥을 받았으며 절대주의(Suprematism), 순수주의(Purism) 등의 미술사 사조의 경향들을 탐구하였다. 또한 황금 분할을 사용하였던 고대 그리스 건축과 플라톤의 사상을 보여주는 Le Coebusier에 깊은 감흥을 받았다. 후쉬아리의 모노크롬 페인팅은 정반대인 것들의 만남과 다른 문화들의 뒤섞임을 보여주며, 전부를 수용할 뿐 아니라 동시에 어느 것도 수용하지 않는 상태를 드러내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상태를 이슬람도 아니며 현대적인 것도 아닌, 그러나 양쪽 모두에 새로운 어떤 새로운 질서로 향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초기 드로잉들은 아랍식 서예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페인팅에서, 후쉬아리는 그 원본을 숨기고, 단어의 정체성도 드러내지 않으면서 단어를 베끼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미지를 원본에서 분리하는 과정에서 형태와 의미를 함께 용해시키기 위하여 그녀는 반복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반복은 서구의 미니멀리즘 작업과 수피교의 명상의 방법인 zikr 모두에서 핵심적인 방법이다. 후쉬아리는 지운 흔적으로 서체를 대체하거나 색으로 서체를 가리면서, 작품을 형태에서 무형태로, 특정 단어에서 발음할 수 없는 것으로, 읽을 수 있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텍스트에서 행위의 흔적을 담아내는 추상화로 전환시키고 있다. 그녀는 페인팅 표면 위에서 발견 되는 집요한 흔적들을 통하여 만드는 과정, 개인적 제스처가 시간을 새기는 과정, 표면에 저항하는 개인의 존재 압력, 개인의 인식적 정확성을 확인하는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후쉬아리가 힘, 호흡, 또는 에너지 같은 가장 덜 물질적인 형태로 자신을 그려내기를 노력하고 있는 듯하다. 그 결과, 남은 것이 바로 행위의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