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Keun Joong | KUKJE GALLERY
Nov 19, 1993 - Dec 4, 1993
K1
Seoul
INTRODUCTION
Up to now, the concept I have been concerned with in my work was in the search for the soul as a santuary from the spiritual suffering people encounter in theor lives through discomfort, despair, hatred, and hopelessness. My meaning of the soul in this sense is lind of a spirit that lies in the small area between agony and comfort, happiness and unhappiness, and between hatred and love. This can be refferd to as the meditative spirit and it is also the passage to what traditional eastern thought called "the whole of the body and the self" and also " the unity of nature". That is to say that "we know" our desire, emotion, thoughts, words and deeds, as nothing more than what they are. To know in this way means that we accept those facts positively letter by letter. The relative point is that the outside objectsalready exist in my mind as images or feeling, and because of this the objects themselves become unrelated to me. The only relationship between the object and the self is in what is left behind in the mind. By thus accepting the object positively as it is, one is able to realize the true nature of the self, which in turn is the real self. Thus one's true self which is the body and spirit can finally realize a oneness. In the past the body and spirit was presumed to be in the state of "the meditative self" or "the knowing I" and this state can be called "the natural being" or "the existential being".
When going through the process of formalizing the concept, symbols were used freely and naturally. All the forms in the work do not have meaning in themselves but together as a whole suggest the state of natural being or the existential being that I pursued indirectly. However, symbolic patterns cannot possibly reflect tangibly what I want from within and as a result at times the work becomes decorative. The idea that the state of being can only be expressed symbolically restrain my own emotion and expressive feeling making the work rigid in an effort to change the direction of my work at this stage and to analyze the problems of my attitude toward my work as well, I have prepared this exhibition.
그 간 본인의 작업에서 일관되게 추구했던 컨셉은 사람들이 현실을 살아가면서 수시로 맞닥뜨리는 불안,미움, 좌절,절망 등의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서의 '정신'을 찾는 것이었다. 이 정신은 고통과 안정, 불행과 행복, 미움과 사랑의 양자 사이, 즉 틈새(Space) 에 위치하는 정신을 말한다. 이것을 '관조적 정신' 이라 부를 수 있는데, 이것은 과거 전통사상에서 말하는 '물아일체'또는 '자연합일' 등으로 들어가는 통로로 볼 수 있다. '관조'란 글자 그대로 보아서 밝힌다는 말이다. 즉 자신의 욕망,감정,생각,또는 언행 모두 있는 그대로 보아 내어 '안다'(Know)는 것이다. 안다는것은 바로 그러한 점들을 긍정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맥점은 밖의 대상은 그것에 대한 이미지 또는 느낌으로 나의 마음 안에 들어와 있으므로 이미 나하고는 무관한 관계가 되고 그 이미지와 느낌, 즉 물과 그것을 알고 있는 나와의 관계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때 이것을 있는 그대로 긍정함으로써, 자신의 진면목인 정체를 알게되는 것이며 물,즉 자신의 정체와 그것을 알고 있는 내가 비로서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과거 전통 안에서의 물아일체란 아마도 그것을 말했으리라 짐작된다. 이와같은 자연합일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관조적 정신' 또는 아는자 의 위치에 서 있는것이 중요한데 이것을 일러 나는 '자연적 존재'또는 '실존적 존재'라 불러왔다.
컨셉을 추구화하는 과정에 있어서 표현형식은 당연히 상징적인 방법을 구사하였으며, 작품위에 등장했던 모든 형상들은 그것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기보다는 그것들이 모여 내가 추구한 자연적 또는 실존적 존재를 간접적으로나마 드러낸다면 족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상징적 형상은 내면에서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반영하지 못하는 일면이 있어 작품이 장식적으로 흐르기도 했으며, 위에서 말한 바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식이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을 억제함으로써 경직된 표현이 되는 경우도 종종있었다. 이에 지금까지의 작업태도에 있어서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작업을 정리해 보면서 향후 작업방향을 진지하게 모색해 보기위하여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였다.
When going through the process of formalizing the concept, symbols were used freely and naturally. All the forms in the work do not have meaning in themselves but together as a whole suggest the state of natural being or the existential being that I pursued indirectly. However, symbolic patterns cannot possibly reflect tangibly what I want from within and as a result at times the work becomes decorative. The idea that the state of being can only be expressed symbolically restrain my own emotion and expressive feeling making the work rigid in an effort to change the direction of my work at this stage and to analyze the problems of my attitude toward my work as well, I have prepared this exhibition.
그 간 본인의 작업에서 일관되게 추구했던 컨셉은 사람들이 현실을 살아가면서 수시로 맞닥뜨리는 불안,미움, 좌절,절망 등의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서의 '정신'을 찾는 것이었다. 이 정신은 고통과 안정, 불행과 행복, 미움과 사랑의 양자 사이, 즉 틈새(Space) 에 위치하는 정신을 말한다. 이것을 '관조적 정신' 이라 부를 수 있는데, 이것은 과거 전통사상에서 말하는 '물아일체'또는 '자연합일' 등으로 들어가는 통로로 볼 수 있다. '관조'란 글자 그대로 보아서 밝힌다는 말이다. 즉 자신의 욕망,감정,생각,또는 언행 모두 있는 그대로 보아 내어 '안다'(Know)는 것이다. 안다는것은 바로 그러한 점들을 긍정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맥점은 밖의 대상은 그것에 대한 이미지 또는 느낌으로 나의 마음 안에 들어와 있으므로 이미 나하고는 무관한 관계가 되고 그 이미지와 느낌, 즉 물과 그것을 알고 있는 나와의 관계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때 이것을 있는 그대로 긍정함으로써, 자신의 진면목인 정체를 알게되는 것이며 물,즉 자신의 정체와 그것을 알고 있는 내가 비로서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과거 전통 안에서의 물아일체란 아마도 그것을 말했으리라 짐작된다. 이와같은 자연합일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관조적 정신' 또는 아는자 의 위치에 서 있는것이 중요한데 이것을 일러 나는 '자연적 존재'또는 '실존적 존재'라 불러왔다.
컨셉을 추구화하는 과정에 있어서 표현형식은 당연히 상징적인 방법을 구사하였으며, 작품위에 등장했던 모든 형상들은 그것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기보다는 그것들이 모여 내가 추구한 자연적 또는 실존적 존재를 간접적으로나마 드러낸다면 족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상징적 형상은 내면에서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반영하지 못하는 일면이 있어 작품이 장식적으로 흐르기도 했으며, 위에서 말한 바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식이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을 억제함으로써 경직된 표현이 되는 경우도 종종있었다. 이에 지금까지의 작업태도에 있어서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작업을 정리해 보면서 향후 작업방향을 진지하게 모색해 보기위하여 작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