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ise Bourgeois | KUKJE GALLERY
Apr 12, 2005 - May 13, 2005
K1
Seoul
INTRODUCTION
Born in Paris in 1911 and moved to the United States in 1938 upon her marriage, Louise Bourgeois was the first woman artist to have a retrospective exhibition at the Museum of Modern Art in New York in 1982. Since then, she has shown at numerous domestic and international exhibitions and has been awarded with such rewards as the Lion d’Or in 1999 at the 48th Venice Biennale.
Louise Bourgeois’ art always starts with her own life and experience. Her family background and the traumatic relationship among her father, mother and governess have continued to underpin her work throughout the long career that spans almost a century. Her art has been means of unraveling, exploring, and conquering the psychic drama of the troubling memories and unsettling mental images of her childhood. The analysis into her past experiences has found shapes in erotic and grotesque images of the body. She has continued to express the human subconscious and internalized experiences to create symbolic expressions of desire, pleasure, love, hate and isolation.
In Bourgeois’ art and life, drawing has played a special part for more than seven decades. She engaged in this form of art at the age of twelve, drawing patterns for her parents’ tapestry restoration trade long before her artistic career started. In her art, drawing is a form of repairing. Repeated lines are like stitches made to repair cloth, and it is the inner need for repetition that is the essence of this body of work. To her, repetition is consoling, sustaining, and also refueling. The rhythm and repetition of her drawings create multiple meanings as images intertwine, transform, and metamorphose into one another.
In this second exhibition of her works, Kukje Gallery will present some of the artist’s latest drawings that record the fluctuations of her solitary existence in the Chelsea townhouse where she has withdrawn into a sedentary life. Along with her many drawings, a lithograph book of color and fabric and an architectural sculpture built of symbolic objects will also be on display. Now ninety four, Louise Bourgeois is definitely one of the living legends in the art world who demonstrates an ongoing passion for new artistic forms of human experience.
루이스 부르주아는 1911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타피스트리(tapestry 융단) 사업을 해온 집안에서 자라난 그녀는 8살 때부터 드로잉을 하면서 사업에 참여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현명하고 포용력 있는 성격인데 반해 아버지는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었다. 특히 그녀의 아버지는 아이들의 영어 가정교사와 불륜 관계를 맺으면서 어린 부르주아에게 커다란 정신적인 충격을 주었다. 이 시절에 경험한 배신의 상처와 아버지에 대한 증오, 어머니에 대한 연민 등은 부르주아 예술의 지속적인 원동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정신적 불안감을 느꼈던 부르주아는 수학의 예측가능하고 안정된 체계에 끌려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과 기하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곧 수학적 관념이 불변의 진리가 아니며 이론적 구조일 뿐임을 깨닫고 예술의 세계로 들어서기로 결심한다. 부르주아는 에꼴 데 보자르(Ecole des Beaux Arts)와 에꼴 드 루브르(Ecole du Louvre)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몽마르트 및 몽파르나스에 있는 화가들의 스튜디오에서 훈련을 받았다. 이 시절에 그녀를 가르쳤던 여러 화가들 중에서도 특히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는 부르주아에게 삼차원에 대한 관념을 심어주어 훗날 조각가가 되는데 영향을 주기도 했다.
1938년 부르주아는 미국인 미술사학자인 로버트 골드워터(Robert Goldwater)와 결혼하여 뉴욕으로 이주했다. 1940년대 말부터 기하학의 영향이 엿보이는 조각을 제작하기 시작한 그녀는 1949년 뉴욕의 페리도 화랑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그녀의 조각은 재료가 다양해지고 주제가 과감해진 50년대와 60년대를 거쳐, 70년대에는 급속도로 부상한 페미니즘 열풍과 함께 더욱 강렬하고 파격적인 인상을 띠게 되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이 정점에 이른 1974년 작 ‘아버지의 파괴’가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70년대 말부터 새롭게 주목 받기 시작한 루이스 부르주아는 1982년 뉴욕 근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여성 회고전을 계기로 국제적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부르주아는 이후로 미국과 유럽, 남미와 일본 등지에서 수 차례 회고전을 가졌으며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황금 사자상을 수상하였다. 그녀의 작품은 현재 세계 유수 미술관들과 주요 컬렉션들에 소장되어 있다. 학계(예일대학과 메사츄세츠 미술대학)로부터는 명예 학위를, 미국과 프랑스 정부로부터는 문화훈장과 일본문화협회로부터는 세계문화상을 수상하는 등 작가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리고 있는 부르주아는 여전히 작업에 대한 끊임없는 의욕을 보여주고 있다.
Louise Bourgeois’ art always starts with her own life and experience. Her family background and the traumatic relationship among her father, mother and governess have continued to underpin her work throughout the long career that spans almost a century. Her art has been means of unraveling, exploring, and conquering the psychic drama of the troubling memories and unsettling mental images of her childhood. The analysis into her past experiences has found shapes in erotic and grotesque images of the body. She has continued to express the human subconscious and internalized experiences to create symbolic expressions of desire, pleasure, love, hate and isolation.
In Bourgeois’ art and life, drawing has played a special part for more than seven decades. She engaged in this form of art at the age of twelve, drawing patterns for her parents’ tapestry restoration trade long before her artistic career started. In her art, drawing is a form of repairing. Repeated lines are like stitches made to repair cloth, and it is the inner need for repetition that is the essence of this body of work. To her, repetition is consoling, sustaining, and also refueling. The rhythm and repetition of her drawings create multiple meanings as images intertwine, transform, and metamorphose into one another.
In this second exhibition of her works, Kukje Gallery will present some of the artist’s latest drawings that record the fluctuations of her solitary existence in the Chelsea townhouse where she has withdrawn into a sedentary life. Along with her many drawings, a lithograph book of color and fabric and an architectural sculpture built of symbolic objects will also be on display. Now ninety four, Louise Bourgeois is definitely one of the living legends in the art world who demonstrates an ongoing passion for new artistic forms of human experience.
루이스 부르주아는 1911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타피스트리(tapestry 융단) 사업을 해온 집안에서 자라난 그녀는 8살 때부터 드로잉을 하면서 사업에 참여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현명하고 포용력 있는 성격인데 반해 아버지는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이었다. 특히 그녀의 아버지는 아이들의 영어 가정교사와 불륜 관계를 맺으면서 어린 부르주아에게 커다란 정신적인 충격을 주었다. 이 시절에 경험한 배신의 상처와 아버지에 대한 증오, 어머니에 대한 연민 등은 부르주아 예술의 지속적인 원동력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정신적 불안감을 느꼈던 부르주아는 수학의 예측가능하고 안정된 체계에 끌려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서 수학과 기하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곧 수학적 관념이 불변의 진리가 아니며 이론적 구조일 뿐임을 깨닫고 예술의 세계로 들어서기로 결심한다. 부르주아는 에꼴 데 보자르(Ecole des Beaux Arts)와 에꼴 드 루브르(Ecole du Louvre)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몽마르트 및 몽파르나스에 있는 화가들의 스튜디오에서 훈련을 받았다. 이 시절에 그녀를 가르쳤던 여러 화가들 중에서도 특히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는 부르주아에게 삼차원에 대한 관념을 심어주어 훗날 조각가가 되는데 영향을 주기도 했다.
1938년 부르주아는 미국인 미술사학자인 로버트 골드워터(Robert Goldwater)와 결혼하여 뉴욕으로 이주했다. 1940년대 말부터 기하학의 영향이 엿보이는 조각을 제작하기 시작한 그녀는 1949년 뉴욕의 페리도 화랑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그녀의 조각은 재료가 다양해지고 주제가 과감해진 50년대와 60년대를 거쳐, 70년대에는 급속도로 부상한 페미니즘 열풍과 함께 더욱 강렬하고 파격적인 인상을 띠게 되었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이 정점에 이른 1974년 작 ‘아버지의 파괴’가 이 시기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70년대 말부터 새롭게 주목 받기 시작한 루이스 부르주아는 1982년 뉴욕 근대미술관(MoMA)에서 열린 여성 회고전을 계기로 국제적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부르주아는 이후로 미국과 유럽, 남미와 일본 등지에서 수 차례 회고전을 가졌으며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황금 사자상을 수상하였다. 그녀의 작품은 현재 세계 유수 미술관들과 주요 컬렉션들에 소장되어 있다. 학계(예일대학과 메사츄세츠 미술대학)로부터는 명예 학위를, 미국과 프랑스 정부로부터는 문화훈장과 일본문화협회로부터는 세계문화상을 수상하는 등 작가로서 최고의 영예를 누리고 있는 부르주아는 여전히 작업에 대한 끊임없는 의욕을 보여주고 있다.